2026. 4. 23. 15:54ㆍ콕뷰 콘텐츠 리뷰


끝까지 간다 (A Hard Day, 2014)
감독·각본: 김성훈
출연: 이선균, 조진웅, 신정근, 정만식
개봉: 2014년 5월 29일
러닝타임: 111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터널 (Tunnel, 2016)
감독·각본: 김성훈 / 원작: 소재원 소설 《터널》
출연: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 신정근
개봉: 2016년 8월 10일
러닝타임: 126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10분의 법칙? 이 감독은 0분에 시작한다
영화과에 들어가면 시나리오 작성법이라는 걸 배운다.
그중에 유명한 공식이 하나 있는데, "10분 안에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는 거다. 처음 10분 동안 배경도 보여주고,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고, 관객이 이 사람한테 감정이입할 시간을 준 다음에 사건을 터뜨리라는 이야기다.
교과서에 나오는 정석이고 대부분의 영화가 이 공식을 따른다.
근데 김성훈 감독은 이걸 그냥 무시해버렸다.
끝까지 간다는 영화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고건수(이선균)가 사람을 친다. 어머니 장례식 중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차 몰고 가다가, 음주 상태에서 뺑소니를 저질러버린 거다. 터널은 더하다. 주인공 이정수(하정우)가 딸 생일 케이크 사들고 기분 좋게 터널 지나가는데, 터널이 그냥 무너져버린다. 영화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주인공 인생이 완전히 뒤집어져버리는 거다.
보통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족은 어떤지, 직장에서 어떤 위치인지 한참을 보여준 다음에 사건을 터뜨린다. 그래야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고 몰입하니까. 근데 이 감독님 영화에서는 그런 시간 같은 거 없다. 사건이 먼저 터지고, 그 사건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이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가 자연스럽게 보이는 거다. 감독님이 직접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영화가 시작하면 누군지도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 재난과 같은 삶에 떨어진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안 후에 감정이입을 하는 게 아니다. 사건 후의 과정을 통해 그 인물의 실체를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이다. 이런 방식에 여전히 재미를 느낀다."
— 김성훈 감독, 씨네21 인터뷰 (2023)
이 한마디가 이 감독님 영화 스타일의 전부다. 진짜 한 문장으로 다 설명이 된다.

끝까지 간다 —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만났다
형사 고건수(이선균)는 영화 시작 시점에서 이미 인생이 엉망이다.
아내한테 이혼 통보 받았고, 경찰서에서는 비리 감찰이 들어왔다. 그 와중에 어머니 장례식이다. 장례식장에서 경찰서로 달려가다가 음주 상태에서 사람을 치어 죽인다. 그리고 그 시체를 어머니의 관 속에 숨겨버린다.
여기까지가 영화 초반이다. 이거 듣는 순간 이미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안 떠나니까. 그리고 겨우 수습했다 싶은 순간, 자기 범행을 전부 지켜봤다는 정체불명의 남자 박창민(조진웅)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심장 쫄리는 두 남자의 싸움이다.
이 영화 원래 제목이 "더 바디"였다. 시체가 핵심 소재니까. 그러다 동료 감독 추천으로 "무덤까지 간다"로 바뀌었는데, 시사회에서 코미디 영화로 오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끝까지 간다"로 최종 변경. 실제로 블랙 코미디적인 유머가 곳곳에 깔려 있긴 한데, 이 영화의 진짜 맛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서스펜스에 있다.
솔직히 개봉 전에는 아무도 관심 없었다. 데뷔작 망한 감독이 7년 만에 내놓는 영화니까 기대치가 바닥이었지. 근데 제67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고, 개봉 후에 입소문이 미쳤다. 최종 345만 관객. 영화팬들 사이에서 "꺼진 감독도 다시 보자"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다.
터널 — 무너진 건 터널만이 아니었다
자동차 영업 과장 이정수(하정우)는 큰 계약 성사시키고 기분 좋게 집에 가는 중이다. 딸 생일 케이크 사들고, 아내한테 전화 걸면서 터널로 들어간다. 그리고 터널이 무너진다. 이 사람한테 남은 거? 배터리 78%짜리 핸드폰, 생수 두 병, 딸 생일 케이크. 이게 전부다.
여기서부터 영화 끝까지 이 남자는 터널 안에 갇혀 있다. 끝까지 간다가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무는 구조라면, 터널은 하나의 상황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구조다. 밖에서는 구조대장 김대경(오달수)이 사투를 벌이고, 아내 세현(배두나)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근데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점점 이상하게 흘러간다. 정치인은 자기 이해관계나 따지고, 언론은 자극적인 보도에 열 올리고, 제2터널 공사 때문에 구조 중단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터널은 소재원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데, 이 소설이 세월호 참사 이전에 나왔는데도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 기억을 떠올렸다고 한다. 김성훈 감독도 "세월호라는 사건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그 기억을 배제하고 찍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재난이 터졌을 때 작동해야 할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 사람 한 명의 목숨이 어떻게 취급되는가. 그게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다. 최종 712만 관객.
공통점 — 설명 안 한다, 그냥 달린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그냥 "사건이 빨리 터진다"만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사건이 터진 이후에도 관객한테 숨 쉴 틈을 안 준다는 거다.
끝까지 간다는 뺑소니 → 시체 은닉 → 목격자 등장 → 협박 → 반격, 이렇게 쉬지 않고 달린다. 터널도 붕괴 → 구조 시작 → 시스템 붕괴 → 구조 중단 위기 → 극한 생존, 쉼 없이 밀어붙인다.
그리고 김성훈 감독 영화에는 플래시백이 거의 없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이라든가, 과거 트라우마라든가, 가족 관계의 배경 같은 걸 따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고건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시체를 관에 숨기는 그 절박한 과정에서 보이고, 이정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생수 두 병으로 버티는 그 시간 속에서 보인다. 굳이 설명 안 해도 관객은 이미 이 사람들 옆에 앉아 있는 거다.
차이점 — 블랙 코미디 느와르 vs 재난 사회극
같은 감독이 같은 문법으로 만들었는데, 두 영화 톤은 완전히 다르다.
끝까지 간다는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싸움이다. 주인공 고건수부터가 비리 경찰이고, 음주 뺑소니범이고, 시체 유기범이다. 감정이입이라기보다는 "이 나쁜 놈이 이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가나"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블랙 코미디랑 느와르가 절묘하게 섞여 있어서, 긴장하다가 웃고 웃다가 소름 돋는 그런 영화다.
반면에 터널은 평범한 사람의 생존기다. 이정수는 아무 잘못도 안 했다. 그냥 집에 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관객은 처음부터 이 사람 편이다. 거기에 터널 밖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는 게 겹치면서 분노랑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끝까지 간다가 심장을 쥐어짜는 영화라면, 터널은 심장을 천천히 조여오는 영화다.
리듬도 다르다. 끝까지 간다 총 컷수가 2322컷이다. 111분 안에 2322번 장면이 바뀐다는 거다. 숨 가쁘게 달리는 리듬 그 자체다. 터널은 126분 동안 하나의 공간에 갇힌 한 남자를 지켜보는 영화다. 급박함 대신 고요함이 긴장감을 만든다. 같은 감독인데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관객을 잡아두는 거다.

서스펜스와 유머, 이 감독의 무기 두 개
김성훈 감독 영화에는 아무리 긴장되는 순간에도 유머가 끼어든다. 끝까지 간다에서 고건수가 어머니 관 속에 시체를 넣고 장례를 치르는데, 관을 나르는 상조 직원들이 "왜 이리 무겁냐"고 투덜대는 장면. 장의사가 울고 있는 고건수를 보고 "어이구, 효자 두셨어, 효자"라고 말하는 장면. 관객은 그 진짜 이유를 아니까, 웃음이랑 긴장이 동시에 터진다.
터널도 마찬가지다. 터널 안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이정수가 라디오를 듣는데, 밖에서는 정치인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 극한 상황이랑 황당한 현실의 대비에서 오는 블랙 유머. 감독님이 이런 말을 했다. "관객을 이완시키는 요소로 유머만 한 게 없다. 서스펜스만 가지곤 두 시간을 이끌 수 없다. 지루함을 없앨 전체적인 완급 조절을 위해선 유머도 필수다."
이 완급 조절이 진짜 중독성 있다. 조였다 풀고, 풀었다 조이고. 이 리듬 때문에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못 뜬다.
배우 이야기
이선균과 조진웅 — 끝까지 간다
이선균은 이 영화에서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쉈다. 다혈질에 짜증 넘치는 비리 형사. 본인도 자기 성격이랑 제일 잘 맞는 배역이었다고 했을 정도다. 조진웅은 진짜 등장만으로 소름 돋는 존재감을 보여줬고, 제35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두 배우가 처음 직접 마주치는 장면의 박력이 장난 아니다. (물론... 최근 조진웅... 하.. 제발 배우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범죄는 짓지말자)
하정우와 배두나 — 터널
터널은 사실상 하정우의 1인극이다. 126분 중 대부분을 무너진 터널 안에서 혼자 연기한다. 상대 배우도 없고 세트도 잔해뿐이다. 이 조건에서 관객을 2시간 동안 붙잡아두려면 배우가 진짜 잘해야 하는데, 하정우는 그걸 해냈다. 그리고 배두나가 연기한 아내 세현, 겉보기에는 단순한 아내 역할 같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안 무너지는 강인함으로 영화의 감정적인 축을 잡아준다. 배두나 본인도 "누가 연기해도 되는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더 도전이었다"고 했다.

김성훈 감독이 두 분이다 — 혼동 주의
이 글에서 다루는 김성훈 감독은 1971년생이다. 끝까지 간다, 터널, 킹덤, 비공식작전을 연출한 그 감독님. 근데 한국 영화계에 김성훈 감독이 한 분 더 있다. 1974년생으로 사바하, 무빙, 창귀를 만든 분이다. 이 두 분이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고, 심지어 비슷한 시기에 같은 조선시대 좀비를 소재로 연출하게 되면서(킹덤 vs 창귀) 진짜 자주 혼동된다. 두 분이 그 인연으로 오히려 친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검색할 때 꼭 구분해서 찾아보길.
꺼진 감독도 다시 보자, 그리고 그 이후
김성훈 감독 필모그래피를 보면 좀 재밌다. 2006년 데뷔작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차게 망했다. 그리고 7년의 공백. 2014년 끝까지 간다로 화려하게 부활, 2016년 터널로 712만 관객 찍으면서 흥행 감독이 됐고, 2019년에는 킹덤으로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의 시대를 열었다.
근데 2023년 비공식작전은 흥행에 실패했다. 관객 반응 자체는 좋았는데 사람이 안 모였다.
수리남 리뷰에서도 얘기했지만, 비공식작전은 수리남이랑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난다. 둘 다 실화 기반이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작전물이고, 하정우가 주연이다. 스토리도 다르고 감독도 다른데 비슷한 느낌이 나는 건 하정우라는 배우의 톤이 일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정우 사용설명서는 확실히 윤종빈 감독이 더 잘 아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에 했었는데, 그래도 김성훈 감독의 터널에서 보여준 하정우는 분명 다른 결이 있었다. 그 결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비공식작전이 흥행에 실패한 건 아쉽지만, 이 감독님은 이미 한 번 7년의 공백 끝에 부활한 사람이다. 다음 작품이 뭐가 됐든 기대할 이유는 충분하다.
콕뷰 한 줄 평 : 공식은 깨트리고 몰입도를 최고조로 만드는건 결국 이야기와 연출의 힘이다. 김성훈 감독님 화이팅!
※ 본 글의 이미지 저작권은 쇼박스에 있으며, 리뷰 목적으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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