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킬러 – 단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걸 바꿨다, 서스펜스의 대가가 만든 가장 조용한 복수 (2023)

2026. 4. 8. 15:13콕뷰 콘텐츠 리뷰

출처 : 넷플릭스

제목: 더 킬러 (The Killer)
감독: 데이비드 핀처 / 각본: 앤드류 케빈 워커
원작: 알렉시스 놀람 · 뤽 자카몽 그래픽 노블 《Le Tueur》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틸다 스윈턴, 찰스 파넬, 알리스 하워드, 살라 베이커, 소피 샤를로치
개봉: 2023년(한국 CGV 2023-10-25 / 넷플릭스 2023-11-10)
러닝타임: 119분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스릴러, 느와르, 액션, 범죄
수상 / 초청: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나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을 가장 좋아한다.

그 사람 영화는 거의 다 봤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핀처 영화는 세븐이다. 근데 케빈 스페이시 때문에 그건 리뷰하기 싫다. 나는 범죄자를 혐오하니까.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그 사람 얼굴을 다시 보면서 “이 영화 추천합니다”라고 쓸 수가 없었음. 그래서 핀처 감독님 영화 중에 뭘 쓸까 고민하다가, 넷플릭스에서 봤던 이 영화가 떠올랐다. 더 킬러. 킬러 영화는 솔직히 세상에 너무 많아서 “또 킬러물이야?” 할 수 있는데, 이건 좀 다르다. 그리고 각본가가 앤드류 케빈 워커다. 세븐의 그 각본가. 핀처 + 앤드류 케빈 워커, 세븐 이후 거의 30년 만의 재회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한 번 눌러볼 이유가 충분하다.


로그라인

완벽하게 통제된 삶을 사는 킬러. 오랜 기다림 끝에 방아쇠를 당겼는데, 빗나갔다. 그리고 그의 세계가 무너진다.

 

줄거리

이름도 없는 킬러(마이클 패스벤더)는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며칠째 타깃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철저한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계획대로 움직이고, 절대 개인적인 감정을 섞지 않는다. 그런데 단 한 번, 방아쇠가 빗나간다. 타깃을 놓친 순간, 조직은 그에게 보복을 가한다. 집에 돌아오니 그의 연인이 처참하게 당해 있다. 여기서부터 그는 자신에게 이 일을 시킨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간다. 변호사, 의뢰인, 전문가, 그리고 ‘짐승’이라 불리는 남자까지.


이 영화를 봐야 하는 결정적 이유

1. 핀처의 범죄 영화인데, 이번엔 주인공이 형사가 아니라 킬러다

핀처 감독 하면 세븐, 조디악, 나를 찾아줘 같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늘 범죄를 쫓는 쪽에 카메라가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완전히 반대편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쪽, 킬러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핀처가 처음으로 카메라를 범죄자 쪽에 둔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한 번은 봐야 하는 이유가 된다.

 

2. 기다림의 미학 — 서스펜스의 대가다운 연출

이 영화 초반 파리 시퀀스가 대단하다. 킬러가 타깃을 기다리면서 독백을 늘어놓는 그 시간이 실제로 길다. 지루할 수 있다. 근데 그 기다림이 쌓이고 쌓여서, 타깃이 나타나는 순간,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리고 빗나가는 순간 — 카타르시스와 허탈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이걸 이렇게 연출할 수 있는 감독이 몇 명이나 될까. 역시 서스펜스의 대가답다.

 

3. 마이클 패스벤더의 원맨쇼

이 영화는 거의 패스벤더 혼자 끌고 간다. 감정 없는 얼굴, 기계적인 움직임, 그런데 연인이 당한 걸 보는 순간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빛. 그 절제된 연기가 이 영화의 톤 전체를 지탱한다.

 

4. 생각지도 못한 틸다 스윈턴의 등장

킬러가 하나하나 처치해 나가는 과정에서 갑자기 틸다 스윈턴이 등장한다.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말이 많은 장면이 시작된다.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인데, 그 긴장감이 격투 장면보다 더 무섭다. 복수의 방식이 참 흥미롭달까. 킬러물에서 이런 식의 대결은 처음 봤다.

 

5. 복수인데, 통쾌하지 않다

킬러물의 복수는 보통 카타르시스를 주는데 이 영화는 하나하나 처치해 나가면서도 시원하지가 않다. 그 비참함이 끝나지 않는 느낌. 킬러가 복수를 완수해도 뭔가 해결되지 않은 찝찝함, 한숨만 나오게 되는 그런 감정이 남는다. 영화가 끝나고도 먹먹하고 뭔가 해결되지 않은 느낌이 공존한다. 핀처라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다.

 

6. 에디 레드메인의 ‘데이 오브 더 자칼’과 비교하면 재밌다

에디 레드메인 주연의 드라마 시리즈 데이 오브 더 자칼도 전문 킬러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같은 “킬러의 일상”을 다루지만 연출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자칼은 좀 더 전통적인 첩보 스릴러에 가깝고, 더 킬러는 거의 명상에 가까운 느와르다. 둘 다 본 사람이라면 같은 소재를 감독이 어떻게 다르게 요리하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출처 : 넷플릭스

⤓ 여기서부터 중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본이 궁금해지는 영화

솔직히 말하면,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핀처니까, 세븐 각본가니까, 뭔가 마지막에 뒤통수를 한 대 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근데 이 영화의 대본을 보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그거다. 어쩌면 핀처는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거 아닐까. 킬러의 복수가 끝나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고. 대본에 그렇게 쓰여 있었기에 핀처가 그런 식으로 연출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끝나고 나면 먹먹하고, 한숨만 나온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

솔직히 핀처의 최고작이라고는 못 하겠다. 굉장히 오랜만에 나온 핀처 영화라 기대가 컸으니까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근데 이 영화는 다른 킬링 타임 영화들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거장의 색이 있다. 화면 하나하나, 소리 하나하나에 핀처의 강박적인 완벽주의가 묻어 있고, 그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본 시간이 아깝지 않다.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건 핀처니까. 그리고 핀처는... 영화를 진짜 잘 만드는 사람이다.


추천

데이비드 핀처 팬이라면 무조건 봐야 한다. 킬러물을 좋아하는데 화려한 총격전이 아니라 조용한 서스펜스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반대로 빠른 전개와 시원한 반전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 있다. 

한 줄 평 (콕뷰) : 조용한 서스펜스, 핀처식 킬러의 복수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