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쥴 앤 짐 – 사랑의 문법을 다시 쓴 영화 (1962)

영화 정보 원제: Jules et Jim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출연: 잔느 모로, 오스카 베르너, 앙리 세르 개봉: 1962년 (프랑스) / 1997년 (한국 첫 정식 개봉)
러닝타임: 105분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시청 가능: 왓챠
영화과 학생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 목록이라는 게 있다. 전함 포템킨, 달세계 여행, 시민 케인...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들이다.
그리고 그 목록에는 반드시 누벨바그가 포함된다. 영화과에서 누벨바그를 안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
누벨바그(Nouvelle Vague). 프랑스어로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이다. 195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된 영화 운동으로, 기존 영화의 문법을 깨고 새로운 촬영 기법과 서사 구조를 실험한 사조다. 대표 감독으로 장 뤽 고다르('네 멋대로 해라'), 프랑수아 트뤼포('400번의 구타') 등이 있다. 이 사람들이 세계 영화의 흐름을 바꿨다. 지금 우리가 보는 영화의 많은 문법이 여기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누벨바그 감독들 중에서 나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의 작품 중에서도 '쥴 앤 짐(Jules et Jim, 1962)'에 대한 리뷰를 하고자 한다.
나만 알고 싶은 영화
솔직히 이 영화는 대중적이지 않다. 흑백이고, 1962년 작이고, 프랑스 영화고, 누벨바그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어려울 것 같다", "지루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따라붙는다. 근데 그 통념을 깨는 영화가 바로 이거다.
보통 영화사에 이름을 올린 고전 명작이라고 하면 무겁고 진지하고 해석이 필요한 영화를 떠올린다. 물론 그런 영화도 있다. 하지만 쥴 앤 짐은 다르다. 너무 뱅뱅 꼬여있지 않고,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거장의 작품인데 접근성이 좋다는 것,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두 남자와 한 여자, 그러나 단순한 삼각관계가 아닌
1912년 파리. 독일인 쥴과 프랑스인 짐은 우연히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된다. 그리고 두 사람 앞에 카트린이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평범한 삼각관계 이야기 같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카트린은 쥴과 결혼하지만 짐과도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게 일반적인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세 사람의 관계는 질투와 배신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얽힌 젊은이들의 초상 같은 것이다. 세 사람 모두 서로를 사랑하고, 세 사람 모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러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카트린, 발암캐이자 팜므파탈
이 영화의 중심에는 카트린(잔느 모로)이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캐릭터는 발암캐다.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고, 예측 불가능하고, 충동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자유롭고 도발적이다.
과거 시대의 영화를 보면 여성 캐릭터가 수동적이고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1962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의 카트린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사회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파격적인 캐릭터인데, 60년 전에 이런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게 누벨바그라는 사조의 힘이다. 기존의 틀을 깨는 것, 새로운 캐릭터와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 그게 누벨바그의 핵심이고, 카트린은 그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프랑수아 트뤼포, 이 감독은 누구인가
프랑수아 트뤼포는 누벨바그의 두 기둥 중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장 뤽 고다르. 둘 다 프랑스 영화 비평지 '카예 뒤 시네마'에서 평론가로 글을 쓰다가 직접 카메라를 잡은 사람들이다.
트뤼포의 첫 장편 '400번의 구타(1959)'는 누벨바그의 서막을 알린 작품으로, 사회에 대한 반항과 부조리를 담았다. 이후 '쥴 앤 짐', '화씨 451', '아메리카의 밤' 등을 연출했다.
고다르가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스타일이라면, 트뤼포는 좀 더 서정적이고 감성적이다.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따라가면서도, 기존 영화 문법을 살짝 비틀어 놓는 방식. 그래서 누벨바그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고다르보다 트뤼포를 먼저 추천한다. 덜 어렵고,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지니까. 쥴 앤 짐이 그 입문에 딱 맞는 영화다.
쥴 앤 짐의 특별함
쥴 앤 짐은 단순히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그 범위를 넓힌 작품이다.
1962년에 삼각관계를 이런 식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선악 구도도 아니고, 누가 옳고 그른 것도 아니고, 세 사람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로맨스 영화의 틀을 깬 로맨스 영화. 그리고 트뤼포 특유의 서정적인 화면과 내레이션, 자유로운 카메라 움직임은 이후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줬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우리가 보는 영화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쥴 앤 짐은 그 뿌리 중 하나다.
아쉬운 점
솔직히 이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다. 현재 국내 주요 OTT에서는 서비스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쿠팡플레이 전부 없다. 구글 플레이 무비나 애플TV에서 해외 스토어 기준으로 대여가 가능할 수 있지만, 한국어 자막 지원은 확인이 필요하다. 오프라인에서는 DVD나 블루레이를 구해야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다. 구하기 어렵다는 게 오히려 이 영화의 희소성을 높여주기도 한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는 걸 추천한다. 재개봉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영화과 학생이 아니어도
사실 영화과 학생이 쥴 앤 짐은 모두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복잡한 영화 이론을 몰라도, 세 사람의 감정에 빠져들면 105분이 금방 간다. 우울하고, 아름답고, 자유롭고, 결국은 쓸쓸한 영화. 흑백이라는 게 오히려 그 분위기를 더 짙게 만든다. 나만 알고 싶은 영화가 있다. 그런데 나만 알면 아까운 영화도 있다. 쥴 앤 짐은 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