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리멘탈 – 찾았다, 내 이상형과 이상향. 직관적인 상징성에 담긴 따뜻함 (2023)

제목: 엘리멘탈 (Elemental)
감독: 피터 손 / 각본: 존 호버그, 캣 리켈, 브렌다 슈에이
성우: 레아 루이스(엠버), 마무두 아티(웨이드)
음악: 토마스 뉴먼 / OST: Lauv – Steal The Show
개봉: 2023년 6월 16일(미국) / 2023년 6월 14일(한국)
러닝타임: 109분 / 등급: 전체 관람가
장르: 애니메이션, 로맨스, 코미디, 판타지
수상: 제96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노미네이트 / 제81회 골든글로브 애니메이션상 노미네이트 / 제76회 칸 영화제 폐막작
나는 애니메이션을 진짜 좋아한다. 일본 애니부터 픽사, 디즈니까지 전부 다. 영화라는 매체로 봤을 때, 애니메이션만큼 풍부한 장르가 없다고 생각한다. 상상력에 끝이 없으니까. 실사 영화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자연스럽게 성립한다. 좋은 영화를 소개하는 블로그에서 애니메이션을 추천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그동안 스릴러랑 전쟁 영화만 쓰다 보니 빠져 있었다.
픽사의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을 섭렵한 사람으로서 하나 말하자면, 픽사에서 나온 영화라고 하면 나는 다른 정보가 필요 없다. 그냥 극장에 간다. 픽사라는 이름 하나가 마케팅 그 자체다. 그리고 하나 더, 픽사 애니는 나의 눈물 버튼이다. 단순히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공감과 감동이 주는 울림이 크기 때문에 울게 되는 영화들이 많다.
영화관을 간 게 언제였더라. 최근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는데, 픽사라는 이유 하나로 고민 없이 갔다. 거리가 좀 있는 영화관이었지만, 오랜만에 가니까 또 좋았다. 리클라이너 관에서 좋은 영화를 본다면 이 정도 가격도 아깝지 않다. 엘리멘탈, 아무 정보 없이 선택했다. 잘 부탁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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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물은 만날 수 없다. 근데 만나버렸다. 그리고 사랑해버렸다.
줄거리
불, 물, 흙, 공기 네 가지 원소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 엘리멘트 시티. 불의 원소인 엠버는 아버지가 일군 가게를 물려받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자기가 진짜 뭘 원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이, 그저 가족이 이룬 것을 지키기 위해. 어느 날, 배관 사고로 물의 원소 웨이드가 엠버의 가게에 갑자기 나타난다. 불과 물. 절대 섞일 수 없는 두 사람이 만나면서, 엠버의 단단했던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 영화를 봐야 하는 결정적 이유
1. "찾았다, 내 이상형과 이상향"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첫 번째 감상이 이거였다. 이상형은 웨이드, 이상향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 그 자체. 물과 불이라는 물질의 성질을 캐릭터의 성격으로 녹여낸 것도, 어디와도 섞일 수 없는 불이라는 원소를 이민자에게 비유한 것도,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복잡하지 않다. 잘 융화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쉽고, 보는 내내 행복한 영화였다. 물과 불의 연애, 가능한가요? 사랑과 용기가 있다면, 가능하다.
2. 원소라는 직관적인 상징 — 유치할 수 있는 걸 공감으로 바꾸는 픽사의 힘
불은 뜨겁고, 물은 차갑다. 불은 물에 닿으면 꺼지고, 물은 불에 닿으면 증발한다. 이 단순한 물리 법칙이 두 캐릭터의 관계 그 자체가 된다. 사랑하면 상대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설정. 애니메이션이기에 유치할 수 있는 설정인데, 픽사는 그걸 공감이라는 코드로 바꿔놓는다. 누군가는 겪어봤을 감정, 맞닿을 수 없는 사람을 좋아해본 경험, 함께하고 싶은데 함께할 수 없는 상황. 픽사식 위로와 문제 해결 방식이 여기서 또 빛난다.
3. 웨이드 — 사랑하고 싶다면 이 캐릭터를 참고하라
웨이드의 단점부터 말하자면, 매우 감정적이고 감상적이어서 잘 운다. 진짜 잘 운다. 그 외에 단점이 없다. 자기 마음에 솔직하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고, 속이 훤히 보일 만큼 투명하다. 긍정적이고, 상대방까지 자기 에너지로 긍정적이게 만들어주는 사람. 사랑 앞에 계산도 없고, 용기도 낼 줄 안다. 불같은 성격의 엠버가 화를 참지 못할 때, 웨이드는 오히려 감싸주고 위로한다. 화를 식혀주고, 때로는 불에게서 눈물이 나오게 해줄 만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여자든 남자든 누구든, 웨이드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면 모든 사랑이 아름다울 거다. 이상형이 웨이드라는 말은,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4. 엠버와 웨이드를 보면서 떠오른 드라마 — <그 해 우리는>
웨이드와 엠버를 보면서 잠깐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헤어진 이유 중 하나였던, 캐릭터의 상황과 성격. 티 없이 긍정적이고 맑은 사람이, 아무 의도 없이 건네는 순수한 칭찬과 위로가, 여유 없이 자기 문제를 꾹꾹 눌러 참고 살아온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애써 숨기고 있던 마음이 들킨 것처럼 느껴져서 가시 돋힌 말이 튀어나오게 만든다. 엠버와 웨이드도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보다 지켜야 하는 것 때문에 헤어지는 선택. 이런 깊은 이야기가 애니메이션 속 러브스토리로 나오니까, 그게 또 그렇게 좋았다.
5. 아버지 버니 —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울게 만든 캐릭터
솔직히 이 영화에서 나를 가장 많이 울게 만든 건 엠버와 웨이드의 러브라인이 아니라 아버지 버니였다. 버니는 고향 땅을 떠나오면서 자기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무에서 유를 이룬 이민 1세대.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엠버는 그걸 지키고 싶었을 거다.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을 거다.
근데 엠버가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나려 할 때, 미안해서 눈물을 흘리는 엠버에게 아버지 버니가 말한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너란다." 자기는 부모님에게 받지 못한 응원이지만, 딸에게만큼은 해주고 싶었던 마음. 행복하다면 어떤 선택을 해도 응원해주겠다는 마음. 자기는 받지 못했기에 더 절실하게 주고 싶었을 그 마음에, 눈물이 더 많이 났다. 아버지, 이렇게까지 감동시키기 있기 없기.
6. 음악, 그리고 엔딩 크레딧까지 — 끝까지 봐야 한다
엘리멘탈 OST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Lauv가 부른 'Steal The Show'를 좋아할 거다. 나도 좋아한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엔딩 크레딧과 중간중간 나오는, 3세계 음악 느낌 나는 부족적인 사운드트랙이 더 좋았다.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와 찰떡으로 맞아떨어지는 음악이었다. 그리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아기자기한 에필로그 애니메이션이 나온다. 후일담 같은 느낌인데, 끝까지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다 안 보고 나가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꼭 끝까지 보시길.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
픽사는 어떻게 이런 캐릭터들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지. 주인공 캐릭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캐릭터가 단순하게 그려지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주인공들의 감정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자기가 진짜 뭘 원했는지, 뭘 잃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다행히 애니메이션은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것도 매우 감동적으로.
알수록 더 많이 보이는 게 픽사 애니메이션의 매력이다. 한 번 보면 재밌고, 다시 보면 더 많은 게 보인다. 이 영화도 그렇다.
추천
연인이랑 봐도 좋고, 가족이랑 봐도 좋고, 혼자 봐도 좋다. 따뜻한 영화가 보고 싶은 날, 울고 싶은데 슬픈 영화는 싫은 날, 이 영화를 틀면 된다. 픽사라는 이유 하나로 극장에 갔고, 역시 틀리지 않았다. 모두에게 웨이드 같은 사람이 있기를.
콕뷰 한 줄 평: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