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를 찾아줘 –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핀처의 모든 영화가 말해온 것 (2014)

제목: 나를 찾아줘 (Gone Girl)
감독: 데이비드 핀처 / 각본: 길리언 플린
원작: 길리언 플린 소설 ‘Gone Girl’
촬영: 제프 크로넌워스
음악: 트렌트 레즈너 & 아티커스 로스
출연: 벤 애플렉, 로자먼드 파이크, 닐 패트릭 해리스, 타일러 페리, 캐리 쿤
개봉: 2014년 10월 3일(미국) / 2014년 10월 23일(한국)
러닝타임: 149분 /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스릴러, 서스펜스, 범죄, 드라마
수상: 제87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로자먼드 파이크) / 제72회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감독상·각본상·음악상 노미네이트
먼저 한 가지. 한국 제목 '나를 찾아줘'에 대해서. 원제는 'Gone Girl', 직역하면 '사라진 그녀' 정도다. 근데 한국 배급사가 '나를 찾아줘'로 바꿨다. 이 제목, 영화를 보고 나면 소름이 돋는다. 누가 누구를 찾아달라는 건지,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 전과 후의 제목이 다르게 읽히는 영화. 그런 의미에서 번역이 잘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데이비드 핀처. 이 블로그를 쭉 읽어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다. 따로 핀처 블로그를 운영했던 적도 있을 정도로 좋아한다. 가이 리치 감독도 좋아하지만, 누가 더 좋냐고 물으면 월등히 핀처다. 팬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영화는 진짜 봐야 한다.
로그라인
결혼 5주년 아침, 아내가 사라졌다. 남편은 아내를 찾아달라고 호소하지만, 세상은 그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줄거리
닉 던(벤 애플렉)은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집에 돌아와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거실에는 격투 흔적이 남아 있고, 경찰이 투입된다. 처음에는 닉이 아내를 애타게 찾는 남편으로 비쳐지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그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미디어는 닉을 범인으로 몰아가고, 대중은 그를 심판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정말 무서워지는 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중반 이후부터다. '누가 했는가'는 중간에 다 풀린다. 그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본체다.
이 영화를 봐야 하는 결정적 이유
1. 핀처의 모든 영화가 말해온 것 —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핀처 감독의 영화에는 공통된 주제가 있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혹은 '당신이 믿고 있는 진실은 거짓일 수 있다'. 세븐도 그랬고, 파이트 클럽도 그랬고, 조디악도 그랬다. 나를 찾아줘는 그 주제가 가장 날카롭게 드러나는 영화다. 이번에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에게 그 칼날이 향한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진짜 그 사람이 맞는가. 내가 알고 있던 관계가 실제로 존재했던 건가. 이 질문이 영화 내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2. 이건 사건 중심의 스릴러가 아니다 — '누구'가 아니라 '왜'를 쫓는 영화
기존 핀처 영화들은 사건 중심이었다. 연쇄살인범을 쫓거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거나. 관객은 '범인이 누구인가'를 추리하면서 봤다. 근데 이 영화는 다르다. 사건은 중반에 다 풀린다.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재미를 기대하고 봤다면, 그건 중간까지만이다. 진짜 이 영화가 시작되는 건 그 이후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이 사람은 대체 무엇인가'를 쫓게 된다. 머리를 쓰는 스릴러가 아니라, 감정을 흔드는 스릴러다. 내가 영화를 봤을 때, 앞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분이 이런 말을 했다. "저 미친년 왜 저래?" 이게 이 영화의 핵심이다.

3. 역대 영화 속 악녀를 통틀어 최고 — 미저리보다 무섭다
로자먼드 파이크가 연기한 에이미 던. 역대 영화 속 악녀들을 전부 모아놓고 줄을 세워도, 이 캐릭터가 맨 앞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저리의 애니 윌크스도 무서웠지만, 에이미 던은 차원이 다르다. 애니 윌크스는 미친 사람이라는 게 처음부터 보인다. 근데 에이미 던은 다르다. 완벽하고, 아름답고, 똑똑하다. 그래서 더 무섭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방식이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머리로 설계된 심리전이라는 점에서 소름이 끼친다. 이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솔직히 수상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149분이 전혀 길지 않다 — 긴장감이 한 순간도 풀리지 않는다
러닝타임 149분. 2시간 반이다. 길다. 근데 체감은 전혀 다르다. 영화가 시작되면 긴장감이 잡히고, 그게 끝까지 풀리지 않는다. 핀처 감독은 전작들이 뛰어나면 그다음 작품은 비교당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사람은 작품마다 한 발씩 앞으로 간다는 거다. 관객의 감정을 쥐었다 폈다 하는 능력이 더 좋아졌다. 세련미도 그렇고. 이건 평가가 아니라 느낌이다.
5. 조연의 쓰임이 완벽하다 — 작은 인물까지 기능한다
이 영화가 진짜 잘 만들어졌다고 느끼는 부분이 여기다. 주연뿐 아니라 아주 작은 조연까지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잠깐 등장했던 인물이 뒤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면서 이야기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조연이 사건에만 기여하는 게 아니라, 관객의 감정에까지 기능한다. 시나리오적으로 봤을 때, 인물의 쓰임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매 순간 긴장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스릴러지. 이게 진짜 스릴러다.
6. 파이트 클럽과는 달라야 하는 이유 — 반전이 아닌 결말
핀처 하면 반전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파이트 클럽처럼 마지막에 머리를 '띵' 하고 울리는 결말. 근데 이 영화는 그런 식이 아니다. 파이트 클럽은 결말을 먼저 알면 재미가 줄어들 수 있지만, 이 영화는 내용을 안다고 해서 안 봐도 되는 영화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알고 봐도 무섭다. 왜냐면 이건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했던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의 깊이를 생각하면, 이 결말은 아쉬운 게 아니라 훌륭한 거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
핀처의 팬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아니, 솔직히 팬이라서 더 냉정하게 보게 되는 것도 있다. 좋아하는 감독이니까 오히려 기대치가 높고, 그만큼 실망할 준비도 하고 본다. 근데 이 영화는 그 기대를 넘었다.
스릴러에서 치밀함과 반전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면 생각이 바뀔 거다. 사건보다 인물이, 반전보다 관계가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핀처는 이 영화에서 스릴러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기존 작품들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지점이다. 역시 핀처. 완벽하다.
추천
스릴러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이다. 스릴러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볼 가치가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 부부라는 관계,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 숨어 있는 것들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149분이 길다고 느껴질 틈이 없다.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간다.
콕뷰 한 줄 평: 사건보다 '사람'이 무서운 스릴러. 핀처가 도달한 새로운 방식이다.